혹, 아이폰 6S 등 아이폰 구형 단말기 사용자들중 최근 앱 실행이 느려지는 등 성능이 저하되고 있다고 느낀다면
단말기 사양의 문제가 아니라 배터리가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배터리를 교체하면 구형 아이폰 6S 플러스도 멀쩡하게 잘 돌아가므로 교체하시고 몇년 더 사용하시길 권한다.


2년이 지나니 탈 많던 아이폰 6S 플러스의 배터리, 드디어 교체

마침내 사용 중인 아이폰 6S 플러스의 배터리를 교체했다.

IT 관련 분야에서 일하기도 했었고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서 IT기기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지만, 스마트폰에 대한 욕심은 그닥 없어서 한번 구매하면 사용이 버거울 때까지 쓰는 편이다. 그런데, 현재 사용 중인 아이폰이 최근 느려져서 새 단말기의 구입을 고려하던 참이었다.

2015년 10월에 구입한 아이폰 6S 플러스는 이번 겨울을 지나면서 영하의 기온만 되면 여지 없이 꺼져 버렸다. 인터넷에 그런 사례들이 올라와도 믿지 않았다. 내 폰은 멀쩡했으니까. 그러나, 추웠던 지난 겨울, 아침 출근시간에 호주머니에서 꺼내 몇 분만 들고 있다보면 느닷없이 90%에서 10~20%씩 배터리가 줄어들다가 40% 정도가 되면 그냥 꺼져 버렸다. 답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봄 기운이 완연해지자 배터리가 광속으로 닳기 시작했고 눈에 띄게 느려졌다. 배터리를 체크해 보면, 사용하는 앱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Wear Level이 거의 20-30%를 왔다갔다했다. 불과 수개월만에 10%대에서 30%가까이 수치가 높아졌다. 즉, 본래 용량에서 최대 30%가 닳아 없어졌다는 뜻이다.

수 개월 전만해도 18% 정도였는데 어느새 30.91%가 되어 있다.

노트북 배터리가 닳는다고 Windows가 느려지지는 않아

배터리는 소모품이니만큼 닳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때문에 성능에 영향을 주어 동작이 느려진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양에 비해 비대해진 최신 iOS를 감당 못해서 구형 아이폰이 느려진 거라 생각했고, 그런 이유라면 배터리를 교체해도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새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부 사용자들이 애플이 폰을 새로 구매하도록 유도하려고 오래된 아이폰을 느려지게 만든다고 의심해 왔기도 하고, 배터리 교체후 성능의 차이가 나는 사용자들과 테크 관련 웹사이트들이 실험 결과를 갖고 주장하자 애플이 결국 의도적으로 아이폰의 일부 모델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느려지게 만들었음을 인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사로 접한 애플의 답변을 보면 "리튬이온 전지는 추운 상태에서는 공급할 수 있는 최대 전류가 낮아지며, 충전도가 낮거나 노화되면 기기가 내부의 전자부품들을 보호하기 위해 갑자기 꺼질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배터리의 노화나 추운 상태에서는 공급 전류량이 낮아지므로 내부 부품들을 보호하기 위해 꺼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동문서답이다. 

그 이후에도 모든 것이 배터리의 화학적 노화가 진행되면서 성능관리가 필요해져서 겪는 현상일 뿐이라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답변만 할 뿐이다. 배터리의 충전량이 낮을 때 원할한 사용을 위해서 불필요한 일부 기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성능관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100% 완충 상태여도 단지 배터리가 닳았다는 이유로 왜 성능이 저하되고 느려져야 하는 것인지, 배터리를 새 것으로 교체하면 왜 빨라지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해명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가 설치된 노트북을 사용하다가 배터리가 닳는다해도 사용시간이 짧아지는 거지, 노트북의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애플의 해명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배터리가 아이폰 6S 플러스의 성능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합리적인 의심

처음에는 내가 가급적 iOS를 최신 버전으로 유지하다보니 2년 5개월전의 아이폰 6S 플러스 사양에 비해 iOS가 버거운 탓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터리 교체후 성능 차이가 난다는 사용자들의 경험담을 찾아보면서 배터리를 교체하기로 결정했고, 배터리를 교체하자마자 그 즉시 느려터지던 내 아이폰이 처음 샀을 때처럼 빠릿빠릿해졌다.

즉, 배터리가 단말기의 동작 속도 등 성능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었다. 애플이 오래된 아이폰을 느려지게 만든다는 루머가 마냥 헛소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배터리를 교체하고 나서 즉시 성능이 개선되었으니 단말기 구입시점 등의 시간적인 요인보다는 배터리가 얼마나 닳았는지 그 Wear Level에 따라, 즉 배터리의 화학적 노화도를 체크해서 일정 수준이상 닳으면 성능에 영향을 주도록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즉, 애플이 '오래된 아이폰'이 아니라 '오래된 배터리를 가진 아이폰'을 느려지게 만든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애플 고객지원센터, "저도 공지를 못 찾겠습니다"

몇 개월 전, 애플코리아도 6S 제품에 대해 배터리 교체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기사를 접했을 뿐 관련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지를 받은 적도 없고 웹사이트에서도 찾을 수가 없어서 애플코리아에 전화를 했다. 34,000원에 아이폰 6S 배터리를 교체해준다는 기사를 봤는데 세부내용은 어디서 확인 가능하냐는 질문에 접수를 도와주던 고객센터 직원도 당황하며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변을 했다. 그게 친절했던 직원 탓이었겠는가, 웬만한 노력으로는 찾기 어렵게 해둔 애플 탓이지.


아이폰6 이상 사용자라면 2018년 12월까지 3만4천원에 배터리 교체가 가능

애플 고객센터 직원도 애플 웹사이트의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던 6S 배터리 교체 프로그램은 여전히 찾기 어렵지만, 검색을 통해 겨우 찾아낸 링크는 아래와 같다. 애플 홈페이지에서는 '배터리'로 검색을 해도, 아무리 뒤져봐도 공지내용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

iPhone 배터리와 성능에 관하여 고객에게 전하는 메시지
A Message to Our Customers about iPhone Batteries and Performance

Apple은 보증 외 iPhone 배터리 교체 비용을 원래 가격에서 $50에 상응하는 66,000원을 ($79에 상응하는 100,000원에서 $29에 상응하는 34,000원으로) 인하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가격은 배터리 교체가 필요한 iPhone 6 이상 사용자를 대상으로 2018년 12월까지 전 세계 적용 예정입니다.

갑자기 꺼지는 경우의 무료 교체에 해당하는 제품은 아래 링크의 일련 번호 검사기를 사용하여 해당 iPhone 6s가 무료 배터리 교체 서비스 대상인지 확인할 수도 있다.

예기치 않게 전원이 꺼지는 문제에 대한 iPhone 6s 프로그램
iPhone 6s Program for Unexpected Shutdown Issues


iPhone 6s의 배터리 무료 교체 대상인 경우는 언제까지일까?

위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예기치 않게 전원이 꺼지는 iPhone 6s"에 대해 무료로 배터리를 교체하는 프로그램 또한 시행되고 있다. 주의할 것은, 공지 맨아래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해당 iPhone 6s 제품의 배터리에 대해 최초 소매 판매일로부터 3년 동안 적용됩니다."

응? 뭔말이지? 이럴 때는 정확한 이해를 위해 영어로도 확인해봐야 한다.

"The program covers affected iPhone 6s batteries for 3 years after the first retail sale of the unit."

"이 프로그램은 해당 단말기의 최초 소매 판매일로부터 3년 동안만 아이폰 6S 배터리에 대해 적용됩니다"는 말이다.

즉, 사용자가 구매한 시점으로부터가 아닌, 판매일로부터 프로그램 시행 기간을 한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구매시점으로부터 표기하는 것이 정상이고 Apple 1년 제한 보증(One Year Limited Warranty - Worldwide)에도 보증기간은 '최종 사용자인 구매자가 최초로 소매 구매한 날로부터 1년("보증 기간")' 즉, 'from the date of retail purchase by the original end-user purchaser'라고 구매일자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사용하던 단어를 바꿔서 구매(purchase)한 날이 아닌, 소매 판매(sale)일로부터 적용했다는 점은 분명 의도가 있다.

즉, 해당 단말기(the unit)인 아이폰 6S 제품이 시장에 소매로 판매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3년간만 배터리 교체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는 말이다. 만약 2015년 9월에 판매가 시작되었다면 3년 후인 2018년 9월까지만 시행된다는 말이다. 즉, 내가 2018년 1월에 해당되는 단말기를 구매했더라도 사용자가 구매한 시점과 상관 없이 2018년 9월에 무료 배터리 교체프로그램은 종료된다고 봐야 한다. 무료 교체에 해당되는 사용자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교체해야 한다.


배터리 교체 신청 및 애플스토어에서 처리 과정

1. 애플 홈페이지의 고객센터를 통해 Apple 지원 문의를 요청하고 전화번호를 남기면 1-2분 내로 전화가 바로 온다. 애플 고객센터는 쇼핑몰이나 은행 등의 고객센터처럼 상담시간에 쫓기지는 않는 모양이다. 전화상담 경험은 느긋하고 여유로왔다.

2. 상담원이 아이폰 모델과 일련번호를 확인하고 나면 교체 대상인지 안내를 해준다.

3. 배터리를 예약하면서 교체 서비스를 제공할 공인서비스센터를 지정한다. 내 경우는 가로수길 애플스토어를 지정했다. 재고 여부에 따라 무작정 방문시 서비스가 안될 수도 있으므로 방문 전 반드시 문의하거나 예약해야 한다.

4. 배터리를 예약하면 예약되었다는 확인 메일이 온다.

5. 지정한 서비스센터에서 배터리 입고가 되었다는 전화가 오면 방문일을 예약한다. 나의 경우는 배터리 신청일로부터 5일만에 배터리가 입고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애플스토어가 일요일도 영업중이라 그런지 일요일에 전화를 받았다.

6. 예약시간에 맞추어 가로수길 애플스토어에 방문하고 접수를 했는데도 배터리 교체에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애플스토어에는 예상과는 달리 고객센터가 별도로 없어서 그냥 지나다니는 담당자들에게 문의하면 서로 서 있는 상태로 아이패드를 통해 예약자 명단을 확인했다.

7. 교체전 아이폰 진단 테스트를 실시하는데 애플 담당자가 아이패드에서 명령을 내리면 사용자 단말기에서 실행이 된다. 진단 테스트 결과, 별로 배터리가 닳지 않았다며 자주 꺼지는 문제는 회로를 점검하고 수리 받는게 낫겠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교체하지 말 것을 권했다. 왜 애플이 10만원하던 배터리 교체비용을 34,000원에 교체해주고 있나? 애플도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교체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면서 예약하고 주말에 시간내서 찾아 간 고객에게 교체 안하시는 게 좋겠다니, 장난하나?

애플은 20%까지 배터리가 닳는게 정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배터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그 배터리를 사용하는 아이폰은 정상인가? 내 경우는 20%까지 닳기도 전에 앱 실행시 현저히 느려지는 등 성능이 저하되어 새폰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 직면했었다. 

그러니, 애플 직원의 말은 무시하고 교체하면 된다. 사용 후 2년이 지났다면 당장 불편하지 않더라도 교체하는 게 낫다. 다시 언급하지만, 애플의 "iPhone 배터리 및 성능"에 따르면 '정상적인 배터리는 정상적인 조건에서 작동할 경우 전체 충전 사이클을 500번 반복했을 때 원래 용량의 최대 80%를 보유하도록 설계되었다'고 주장하므로 20%정도 닳은 배터리는 애플에게는 정상 배터리다. 애플이 그렇게 우기더라도 아이폰의 성능까지 정상은 아니기 때문에 교체해야 한다고 본다.

8. 배터리 교체 후 진단테스트에 필요하니 아이폰 패스워드를 알려 달라고 하는데,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 알려줄 수 없다고 답해줬다. 꼭 필요하다면 아이폰을 아예 초기화하여 삭제하고 주겠다고 했는데 잠시 뒤, 최신 버전의 iOS로 업데이트가 되어 있으면 별도의 패스워드가 없어도 테스트 가능하다며 필요없다고 한다. 패스워드를 전달해서 개인정보나 사진 등이 유출되면 그 책임은 모두 본인의 부주의 탓이다. 알려줄 때는 그에 대해 책임질 각오를 하는 게 맞고, 안 알려줄 거면 최신 iOS로 업데이트하고 가야 한다. 그냥, 애플을 믿고 패스워드를 알려달라는 걸 보니 고객정보의 이용과 보호에 관해선 조금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9. 아이패드로 접수 확인 후 스티커 형태의 접수증을 출력해 주는데 별도의 데스크가 없어 여전히 당황스러웠다. 흔히 상상되는 고객센터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없다. 이 모든 과정이 지정된 공간도 없이 그냥 애플스토어 내 적당한 빈 곳에 고객과 담당자 모두 서 있는 채로 이루어진다. 수증을 출력해 주면서 1시간 반 뒤에 입구 옆에 서 있는 직원들에게 찾으러 가면 된다고 한다.

10. 예정 시간에 맞추어 애플스토어 입구 안쪽에 서서 대기 중인 직원들에게 단말기 찾으러 왔다고 접수증을 주면 담당자가 아이패드로 교체 완료 여부를 확인해주는데, 30분 더 걸린다고 해서 근처 스타벅스에서 넉넉하게 한 시간을 더 대기하다 겨우 찾았다. 나중에 교체 완료 이메일이 전송된 시간을 보니 2시간이 걸렸지만 실제로는 접수 후 찾을 때까지 2시간 반을 써버린 셈이다. 교체가 완료되면 이메일로 알려준다지만, 폰은 맡기고 없어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약속한 시간에는 작업이 완료되어 있어야 한다. 예정시간보다 30분 더 걸린다고 다시 오라는 것도 황당하지만 30분 뒤에도 된다는 보장이 어디있나? 예상시간인 1시간 30분도 넉넉하게 정한 시간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안 지키니 고객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11. 교체비용 34,000원에 대해 신용카드로 결제하겠다고 했더니 느닷없이 결제하고 오겠다며 고객 신용카드를 받아들고는 사라졌다. 고객이 보고 있는 곳도 아니고 어딘지도 모를 곳에 들고 가서 결제를 해오는 상황이 좀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내가 만약 한국에 잠시 들른 외국인이었다면 혹시 내 신용카드 복제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을 것이다. 역시, 현장에서 고객정보의 이용과 보호에 관해서는 많은 문제점이 보인다. 결제 영수증은 이메일로 보내준다.

이미 6일전에 서비스가 가능한 일자와 시간을 확인하고 예약 후 방문했는데도 교체하는데 2시간이 걸렸고 약속한 시간을 애플이 어겨서 재차 방문하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2시간 반을 소요했다. 오래 걸렸고 불편했다. 2시간이나 걸릴 정도면 서비스 가능한 일자와 시간을 확인하고 예약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애플"스토어"는 말 그대로 물건 파는 가게지, 고객서비스는 주된 업무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낀 경험이었다. 내 잘못이다. 물건 파는 가게에 와서 사지는 않고 배터리나 갈아 달라고 했으니.


배터리 교체 후 Wear Level 체크하니 0.00%인 새 배터리

아이폰 받고 직접 체크해 보니 Wear Level이 0.00%로 새 배터리가 맞다. 전혀 닳지 않은 배터리다.
그런데, 배터리가 13%다. 충전이 전혀 안되어 있다. 100%까지 완충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3%는 너무 하지 않나?

Wear Level 0.00%. 전혀 닳지 않은 새 배터리.


다시 쌩쌩 돌아가는 아이폰 6S 플러스

배터리 교체 후 처음 샀을 때처럼 빠릿빠릿해졌다. 즉, 배터리가 닳을 수록 단지 사용시간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단말기의 성능에 영향을 줬다는 얘기다. 배터리 교체 전과 후를 직접 비교할 성의까지는 없어서 유튜브에서 직접 비교한 영상을 찾아 보았다. 아래 테스트 영상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눈에 봐도 오른쪽이 배터리 교체 후의 성능이다.


성능이 저하되었던 것은 구형이어서가 아닌 단지 배터리 탓

애플은 iPhone 배터리와 성능에 관하여 고객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 "고객의 제품 업그레이드를 유도하기 위해 Apple 제품의 수명을 의도적으로 단축시키거나 사용자 경험의 질을 떨어뜨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하였으나, 어떤 이유에서건 배터리의 노화로 인해서 아이폰의 성능이 저하되는 등 사용자 경험의 질이 떨어졌던 것은 확실하다. 이번 배터리 교체후 성능이 원래대로 회복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애플의 주장은 헛되다고 본다.

느려졌다고 짜증내고 다른 폰으로 갈아타기 전에 일단 배터리 교체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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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on2real

Vision to Reality


요즘 음악하는 젊은 애들은 중요한 게 없어. 

인생이 없지.


음악이라는 게 뭐야.

그게 인생이지.

그게 또 예술이고.


-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2010)" 중에서



한국 토종 1세대 재즈 뮤지션들과 신세대 유학파 뮤지션들


한국의 1세대 재즈 뮤지션들은 대부분 미8군 악단 등에서 재즈를 알게 되고, 선배 뮤지션들로부터, 또는 독학으로 재즈를 배웠다고 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지로 유학을 떠나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 세대들에게는 지금과 같이 인터넷으로 음악과 정보를 간단하게 구할 수 있는 세대는 절대 이해 못할 치열함이 있었다. 군사독재를 거치며 철저하게 해외에서 유입되는 모든 문화가 검열되던 시절의 재즈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귀한 것이었다. 재즈에 대한 정보도 구하기 힘들었고, 있어도 나눌 길을 찾기도 어려웠으며, 배울 길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불법 복제된 빽판 LP 한 장도 감지덕지했을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턴테이블에 올리면 불법 제조라 더욱 조악하게 지직거리는 LP 특유의 노이즈 사이로 들리는 빽판에 대한 향수가 나도 있다. 80년대까지는 불법적으로 복제된 매체들(카세트 테이프, 빽판, 불법 복제 비디오 테이프 등)로밖에 접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구해 듣던 음악들 한 곡 한 곡에 대한 리스펙트는 엄청났으며, CD나 디지털 음원을 인스턴트로 소비하는 세대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생계도 걱정하던 어려운 시절에 재즈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 나누고 배워 스스로 재즈 뮤지션이 된 1세대에 대한 존경 또는 존중은 있어야 한다, 재즈 팬이라면.


현재, 블루노트(Blue Note) 같은 전문 재즈 클럽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재즈 애호가도 아닌 다수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연주하게 되는 한국의 척박한 재즈 신에서 유학이 필수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재즈의 본고장에서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거친 연주자들이 많이 유입됨으로써 타 장르의 뮤지션들이나 팬들에게도 조금씩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재즈 인구가 그만큼 늘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일부에서는 테크닉과 이론에 매몰된 몰개성한 뮤지션들을 공장처럼 찍어 낸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나는 후자에 한 표. 



유학파 재즈 뮤지션들의 비(非) 재즈 앨범


나는 10대 시절 미국 팝 음악(American Pop Music)과 락(Rock), 프로그레시브 락(Progressive Rock) 등을 미친 듯이 열심히 듣다가 우연히 재즈를 접하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오랜동안 듣고 있지만, 국내 뮤지션들의 앨범을 구입한 경우는 많지 않다. 서교동에 살 때는 바로 코 앞에 있던 신관웅씨의 문글로우를 지나다니면서도 늘 가봐야지 하다가 결국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퓨젼(Fusion)도 아니고 재즈 퓨젼(Jazz Fusion)도 아닌 퓨젼 재즈[각주:1](?)라는 쟝르로 80년대 후반 등장했던 '봄여름가을겨울'도 퓨젼 밴드라고 하기에는 많이 아쉬웠고(그냥 Rock 밴드?), 1990년대 초반에 김광민, 정원영, 한상원, 한충완 등의 2세대(?) 버클리 유학파들이 쏟아져 나올 때도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재즈라고 보기는 어려운 음악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버클리 음대(Berklee College of Music)에서 재즈를 공부했던 故정성조씨가 1호 유학파인 것으로 안다.

김광민 1집, "Letter From The Earth". 앨범이나 곡의 구성을 높이 평가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가끔 듣게 하는 매력이 있다.


김광민의 1집 "Letter From The Earth (1992)"는 아직도 카세트 테입과 CD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뉴에이지에 재즈가 살짝 가미된 정도라고 해야 한다. 특히, 타이틀 곡인 'Morning'은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예쁜 곡이지만 어린이 동요 같은 곡이다. 정원영의 앨범은 재즈가 아니라 그냥 가요 앨범이다. 1집 "가버린 날들 (1993)"의 곡들은 모두 좋다. 녹음 상태는 정말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한동안 즐겨 들었었다. 한상원의 1집 "Seoul, Soul, Soul (1993)" 앨범에는 미국의 유명 베이시스트 윌 리(Will Lee)가 베이스로 참여해서 더 관심을 갖고 들었었는데, 비트가 강한 '서울, 소울, 소울', '어쩔수가 없나봐' 같은 곡들과 양희은이 노래 부르는 '물망초' 같은 트랙들이 짬뽕으로 섞여 있어서 도대체 이 앨범의 성격이 뭐지?하며 의아해 하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김광민의 앨범은 5집까지 모두 구매했지만 1, 2집을 가장 즐겨 듣는다. 1, 2집에 있는 곡들은 '김광민 피아노 앨범 (1994, 삼호출판사)'이라는 악보집에 실려 있는데, 당시 MBC "일요예술무대"에서 사인해서 보내 준 것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피아노로 연주하기 쉽게 편곡도 되어 있고 곡들도 모두 아름다워서 대부분 한 번씩은 연주해 봤던 것 같다. 김광민 음악은 정통 재즈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특유의 감성과 캐릭터가 담겨 있는 음악으로 지금도 가끔 들을 때가 있다. 



국내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에 실망하게 되는 현실


김광민 이외의 비슷한 세대의 버클리 출신 뮤지션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라이브에서 보여 준 형편없는 연주(improvisation)에 당황해서 실망했던 기억이 여러 번 있어서 유학파들의 연주력에 대해 그닥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최근의 젊은 뮤지션들의 연주는 훌륭하지만 이때 받은 충격이 잔상으로 남아 그닥 큰 기대를 안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재즈 뮤지션이 재즈를 연주해서 인정 받는다는 것은 미국 본토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해마다 그 수많은 재즈 전공자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지만, 에스페란자 스폴딩(Esperanza Spalding)이나 히로미(Hiromi)처럼 신인이 주목 받고 살아 남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재즈를 클럽에서 듣는 문화 자체가 일천한 한국에서는 더더욱 재즈 연주자로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화성학을 가르치거나 개인 렛슨, 대중 음악의 세션 등을 통해서 살아 남는 방법 밖에 없는 척박한 현실에서 애초에 높은 수준의 재즈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한국의 재즈 뮤지션들과 재즈 팬들의 딜레마가 여기 있다. 나를 비롯한 한국의 음악 마니아들은 록(Rock)이든 팝(Pop)이든, 힙합(Hip Hop)이든 재즈(Jazz) 든 그 쟝르가 뭐든 간에 좋아하는 음악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을 만큼 지독하게 찾아 듣는다. 즉, 음악의 소비층이 얇은 것 뿐이지, 그 전문성이나 깊이가 옅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막 갓 졸업한 재즈 뮤지션들이 감성보다는 배운 이론에 충실하게 만든 습작이나 학예회에 어울릴 법한 곡들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다. 이들 젊은 뮤지션들 또한 자신이 진정 하고 싶어하는 음악을 했다가는 제작비도 건지지 못하겠다는 우려와 기대로 고민하다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야 만다. 결국, 서로 만족할 수 없는 결과물을 마주하고는 상호 괴리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 국내 재즈계의 참담한 현실


몇 개월 전, "재즈가 알고 싶다"라는 팟캐스트를 우연히 알게 되어 애청하고 있는데, 타이틀대로 "재즈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방송에 나오는 "뮤지션들이 알고 싶어서" 듣는다. 뮤지션으로서 겪고 있을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에서 오는 패배감을 얼핏 얼핏 읽고는 공감하게 되어 마음이 아프다. 본인들은 모를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런 감정이 자주 표출된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부하고 각고의 노력을 했음에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도 서럽지만, 제대로 된 공연 장소도 없고 손에 쥐어지는 몇만 원의 푼돈은 더 서글프다. 특히, 술에 취한 손님에 떠밀려 피아노 연주 중 의자와 함께 넘어져 뇌진탕을 일으킨 적이 있다는 김마리아의 에피소드를 듣고는 정말 화가 났다. 방송에서는 웃고 넘어갔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뮤지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 정도로 열악한 현실일 줄은 몰랐다.



지지와 응원이 필요한 때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는 ‘유학까지 가서 배운 재즈가 왜 그래?’라는 입장이었는데, 앞으로 한국의 재즈(Jazz Scene)를 이끌어 갈 젊은 뮤지션들에게는 공감하고 관심을 보여 주는 작은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서 재즈를 배웠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식 재즈를 흉내내야 할 이유도 없고, 굳이 한국식 재즈를 한답시고 국악과 무리한 접목을 할 필요도 없다. 자신만의 음악을 하면 될 일이다. 재즈 팬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단지 작은 지지를 보여주는 성의가 필요하다.


유학파는 국내파든, 지백, 민세정, 윤지희, 김마리아, 곽지웅, 오종대, 송미호, 김주헌, 이한얼, 전용준 등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뮤지션들의 진면목은 본 적도 없었고, 그들도 보여 줄 기회가 제대로 없었을 것이다. 실제론 비밥(Bebop)을 연주하지만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클로드 볼링(Claude Bolling)을 연주했을 수도 있다. 


솔직히 2016년 4월 29일에 있었던 메가박스에서의 라이브 연주는 성에 차지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박수를 쳐주고 공연 후 CD를 사서 사인을 받아 주는 정도의 지지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괜챦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내가 지백씨의 곡을 맘에 들어 해서, 재즈파크 공연에도 가고, CD도 사고 'My Sweet Orange Tree' 음원도 구매했다. 팟캐스트 후기나 뮤지션들의 페이스북에 코멘트도 남겼다. 이런 정도의 관심만으로도 지지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족한 점을 지적하기보다 격려를 해 줄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척박한 재즈신에 대해 얘기하자면 1세대 재즈 뮤지션들만 할까.



당신들은 꿀릴 게 없다


나는 그냥 재즈를 듣기만 하다가 어느 날 칙 코리아(Chick Corea)의 "Elektric Band(1986)" 앨범을 접한 후 살짝 충격을 먹고는 'Rumble', 'Got A Match?' 같은 곡들을 겁도 없이 내 맘대로 카피하기 시작했다. 이후, 정확한 코드와 악보도 궁금하고 즉흥연주(improvisation)에 대해 배우고 싶어서 독학으로 재즈를 공부했다. 그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론 공부와 연습으로 보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 동안 무심코 들어왔던 연주자들에 대한 존중(Respect)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모든 재즈 뮤지션들에게 나는 리스펙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즐겨 듣는 칙 코리아도 쥴리어드를 중퇴한 젊은 20대 초부터 프로로 활동을 시작했다. 선배 뮤지션들로부터 배울 수 있던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제외하고 재즈를 배운 커리큘럼으로만 보자면 유학파 그대들이 당시의 칙 코리아보다도 구조적이고 짜임새 있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중고교 시절부터 실용음악을 배웠을 거고, 대학에서도 버클리 유학파 교수들로부터 지도를 받은 후에 버클리로 유학을 간 경우도 많지 않나. 그렇게 오랜 시간 재즈에 대해 공부하고 연습했으니 배운 걸로만 보자면 꿀릴 게 없다. 그러니 좀더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음악에 몰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예전에, 'K-POP스타'에서 박진영씨가 '블루스 스케일(Blues Scale)'을 처음으로 배워서 만든 곡이 히트곡 'Honey'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Honey의 호른 섹션(Horn Section)이 돋보였는데, 이 편곡(Horn Arrangement)은 재즈와 퓨젼계에서 호른 섹션 편곡으로 유명한 트럼펫터 제리 헤이(Jerry Hey)가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박진영씨를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꼽지는 않지만, 자신이 배운 것을 대중화하는 데 천재적인 노력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젊은 재즈 뮤지션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응용이 아닐까 싶다. 


재즈 뮤지션에게 팝음악을 하라는 게 아니라, 행여, 학교에서 배운 수 많은 테크닉과 이론에 매몰되어 청중과 소통하지도 못하는 억지스런 곡으로 자신이 배운 것을 으스대려 하지 말며, 연주하는 이와 듣는 이가 모두 즐거워 할 수 있는 그런 경험들을 쌓아 나가다 보면 K-Pop처럼 K-Jazz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전하는 것이다.


이 포스트 서두에 인용한 1세대 재즈 뮤지션 유복성씨의 읊조림은 좀 과한 면이 있을지 모른다.


요즘 음악하는 젊은 애들은 중요한 게 없어. 

인생이 없지.


음악이라는 게 뭐야.

그게 인생이지.

그게 또 예술이고.


그러나, 이 글을 인용한 것은 나도 똑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분명히,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투박한 전(前) 세대의 음악에 비해 테크닉적으로도 향상됐고, 여러 스케일을 넘나들며 세련된 작곡 솜씨를 뽐내는 곡들이 있지만 연주에 있어서나 작곡에 있어서나 와닿지가 않는다.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구하기 힘든 것을 힘들게 찾아 다니며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 만들어 온 내공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는 모양이다.


진심으로 그대들의 노력과 고뇌가 보상받을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게 되기를 기원한다.








  1. 재즈에 타 음악 쟝르의 특성을 융합한다는 의미에서 퓨젼(Fusion)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보통은 그냥 퓨젼(Fusion)이라거나 재즈 퓨젼(Jazz Fusion)이라고 하지, 퓨젼 재즈라고 하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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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on2real

Vision to Reality

아이키도

Misc. 2015.12.27 06:27

남자 아이들의 로망, 무술(武術)


나는 무술이라는 것에 대해 보통의 남자 아이들 보다 조금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꼭 누군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영화의 판타지에 매료되어서도 아닌, 그냥 태생적으로 무술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다. 나는 구기종목을 좋아하지 않지만, 또래들이 야구와 축구를 좋아하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냥 취향이 무술과 같은 몸 쓰는 종류의 운동인 것이다.


1970년대, 내가 다니던 어느 서슬 퍼렇던 태권도장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그 당시 나와 같이 수련했던 또래들이 불과 7~10세에 불과한 나이였음에도 군대처럼 집단 기합도 많이 받았고 심지어는 매를 맞기도 했다. 매라고 해봐야 일렬로 벽에 물구나무를 세운 상태에서 발바닥에 회초리를 가볍게 때리는 수준이었지만 집에서도 맞지 않던 아이들에게 태권도 도장은 이미 심리적으로 공포를 일으키는 공간이 되기에 충분했다.


낮시간의 도장은 대체로 햇빛만이 유일한 광원이던 다소 음침한 곳이었고, 요즘의 체육관들처럼 쿠션있는 매트 바닥도 아닌 차디찬 목재의 마루였다. 그곳에서는 떠들어서도 안 되었으며 관장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었다. 엄마, 아빠의 말은 안 듣더라도 도장에서 관장님의 한 마디를 거스른다는 것은 아무리 어린 나이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즉, 당시엔 태권도장에 다니면서 착한 아이가 되지 않기란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관장님은 절도 넘치는 무술가적인 언행에서 내뿜는 카리스마로 아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도장이라는 공간은 신성시되었다. 아동교육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지나친 면이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흔하지 않은 충심(忠心)과 무심(武心)이 길러지던, 도장(道場)이라 할 만했다. 단순히 체육관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머릿속 기억들이 이제는 향수로 작용하는 일이 빈번해지는 나이가 되다 보니, 나는 그때 그 시절의 도장이 무술을 수련하기에 이상적인 공간으로 여겨진다. 가르치는 지도자는 존경 받을 언행을 하고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주며, 수련하는 공간은 즐겁게 뛰어 노는 곳이 아니라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닦는 신성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당연시 되는 공간말이다. 그래서 요즘 어린 아이들과 늦은 시간까지 함께 놀아주고 일일이 차로 데려다 주는 운전기사 노릇까지 해야 하는 한국 무술 지도자들의 현실은 너무도 서글프게 느껴진다. 내가 사는 곳 인근에는 1층에 유리벽이 설치된 태권도 체육관이 있는데, 매번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광경은 마치 놀이터를 보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짓게 된다. 도장은 온데간데 없고 체육관만 남았다. 현재와 과거의 도장을 비교해보면, 장단점이 있겠지만 공간에 대한 경외심이 없으면 가르치는 무술은 단순한 싸움기술로, 가르치는 사람은 기술자로 격하되기 쉽다.



무술을 배우러 다니다


남자 아이들이 이소룡(李小龍, Bruce Lee)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세대와 상관 없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중학생 시절에 이소룡의 팬이 되었는데, 당시엔 이소룡처럼 멋있는 중국무술을 배우려고 하면 무슨 무술인지도 모를 십팔기(十八技)만 배우던 시절이다. 성인이 되어 알아 보니 십팔기는 대만 화교들이 주축이 되어 퍼뜨린 국술(國術)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무예신보(武藝新譜)'에 실렸다는 18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요즘에야 워낙 무술에 대한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그런 정보들이 일반화되어 태극권(太極拳), 팔극권(八極拳), 당랑권(螳螂拳), 형의권(形意拳) 등등 정확한 유파의 이름을 걸고 가르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그 당시 중국무술을 가르치는 곳은 주로 '쿵푸''십팔기'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한 유파의 명칭이 도장 한 가운데 크게 붙여져 있었는지 모르지만 중학생이었던 나는 알아본 적이 없다.


어쨌든, 내가 경험했던 중국 무술의 수련 방법과 그 실전적 가치를 생각해 보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의문점이 많다. 성인이 되어서는 합기도도 해보고, 킥복싱과 격투기도 해보았다. 격투기는 그 이전에 수년간 배웠던 무술들에서 느꼈던 실전적 가치에 대한 의문점을 불과 2-3개월 만에 해소시켜 주었는데, 일반인들이 배우기 어려운, 실전 경기에서 사용되는 팁들을 위주로 선수 트레이닝을 받은 적도 있지만 격투기협회들간의 이권 다툼으로 예정되었던 대회가 무산되는 등 여러가지로 실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경험 상, 실전에 당장 필요한 무술을 찾는다면 격투기를 추천하고 싶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요즘 유행인 종합격투기(MMA)나 주짓수(Brazillian Jiu-Jitsu) 같은 무술들도 실전에서 바로 위력을 발휘하는 그런 종류의 운동일 것이다.



황당했던 일본 합기도, 아이키도


지금은 인터넷으로 각국 여러 종류의 무술 동영상들을 집에서 손쉽게 볼 수 있지만, 내가 합기도를 배우던 때에는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용을 들이지 않고 타무술의 영상을 접하기란 쉽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책으로만 보던 일본 합기도인 아이키도(이하 한국 합기도와 구분을 위해 아이키도라 함) 연무 비디오를 구해 본 느낌은 말 그대로 황당했다.


아이키도 중에서도 다소 과격한 편인 요신칸 아이키도(養神館 合気道) 시오다 고조(故 塩田剛三, Shioda Gozo)의 시범이었는데 충격적이었다. 그 위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발차기도 없고 주먹을 쓰지도 않으며 유도처럼 잡고 던지는 것도 아닌데도 손이 살짝 닿기만 해도, 발가락이 살짝 닿기만 해도 사람들이 벌렁벌렁 날아가고 꼬꾸라지는 장면들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사기라며 간간이 웃으며 봤던 기억이 난다. 연이어 구해 본 비디오는 아이키도 2대 도주(2代 道主)였던 우에시바 킷쇼마루(故 植芝吉祥丸, Ueshiba Kisshomaru)의 연무 시범이었는데 무슨 비디오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닥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때 본 인상들을 떠올려보자면 역시 현재의 아이키도보다는 다소 과격한 형태였다는 느낌이다. 부드럽다기 보다는 그냥 획휙 날려진다는 느낌 뿐이었으니까. 어쨌든, 당시에는 홍콩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아이키도에 대한 첫 인상은 영화처럼 과장된 연출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고심 끝에 선택했던 합기도 도장


당시 아이키도를 접하고 한 번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좀 알아보니, 한국의 합기도와 일본의 아이키도는 한자(漢字) 표기만 같을 뿐 다른 무술이었다. 합기도는 일본의 대동류 합기유술(大東流 合氣柔術)의 고수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의 제자라고 주장했다는 최용술씨가 한국에 귀국하면서 전파한 야와라(やわら)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각주:1] 그렇지만, 신라 화랑에서 유래했다는 합기도계의 주장에 대해서 크게 반감을 가진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일제 시대를 지나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이름 모를 명칭으로 존재하던 무술들에 일본 유술의 기술들이 혼합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명칭만 합기도라고 하게 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니까, 뭐 그 중 하나라도 신라시대로부터 전승되었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차력을 가르치는 도장이나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명칭의 무술들을 가르치는 곳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무시무시한 차력시범을 본 적도 많았는데, 가끔 TV에 소개되던 차력시범을 합기도 사범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키도와는 다른 전통무술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합기도와는 달리 아이키도에는 차력이나 화려한 발기술 같은 요소가 없으니까. 게다가, 내가 속했던 합기도장에서는 '고무도(古武道)' 라는 것도 같이 가르쳤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고 합기도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그닥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무술을 배우려면 여러 유파의 특성을 잘 알아 보고 고민을 해야 하는 것처럼 합기도도 그런 고민이 필요하다. 동일한 합기도라는 명칭을 쓰더라도 도장마다 소속된 협회가 다 다르며, 협회마다 기술의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합기도가 같은 거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당시에는 대한합기도협회, 국제연맹합기회, 대한기도회 등 3개 합기도 단체만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특히 대한기도회 소속 도장이 월등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 이미 합기도계의 파벌이 심한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집 앞 넘어지면 코 닿을 곳에 국술원 합기도장이나 여타 도장이 있었지만, 버스를 타고 멀리 다녀야 하는 대한기도회 도장을 찾아 입문했다. 지금은 그 이유가 잘 생각나지 않는데, 당시엔 대한기도회 합기도가 아이키도의 원류인 대동류 합기유술에 가장 가깝다고 판단했었건 것 같다.


그러나, 1990년도에 처음 접했던 합기도에 대한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산에서 꽤 유명했던 대한기도회 소속 도장에서 처음 접한 합기도는 낱기술 꾸러미였다. 이른 저녁 시간대를 담당하던 혈기만 왕성하고 지도경험은 부족했던 젊은 사범의 문제였을지 모르겠지만, 하루에 다섯 수씩 가르쳐 준다고 했다. 아무 원리도 없고 서로 관련성도 없어 보이는 관절기들을 그냥 다섯 수씩 가르치는 것이다. 찌르기와 발차기, 태권도 품세와 흡사한 이무권이라는 형도 가르치고 있어서 내가 태권도를 배우는지 합기도를 배우는지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도리깨봉(경찰봉 중간에 손잡이 붙은 걸 생각하면 됨)을 무기로 따로 배워야 했는데, 관절기와 태권도 같은 격기, 무기술 등 체계도 없고 연관성도 없는 기술들을 각각 따로 따로 배워 한 마디로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이었다.

일본 오끼나와섬에서 유래했다는 무기로 알려지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일본 명칭인 톤퐈(トンファー, Tonfa)가 널리 쓰인다. 많은 국가에서 경찰봉으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때리고, 막고, 때리는 등 다용도로 사용 가능한 효율적인 무기로 분류된다. 부산 지역 고무도협회도장에서는 도리깨봉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모든 대한기도회 합기도 도장에서 그렇게 가르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산의 범일동 지역 일대에서 여러 개의 도장을 운영할 정도로 명성도 있었고 당시 유명했던 총관장과 그 아들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던 꽤 유서 깊은 도장이었다. 총관장을 회상하면 뽀빠이 이상용씨 이미지가 떠오른다. 작지만 다부지고 항상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 다니셨는데, 직접 지도를 받은 적은 없지만 주변의 인망도 두텁고 관원들한테도 상당히 인자하셨다. 무술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이 가끔 정체술(整體術) 같은 치료를 받으러 왔던 것으로도 기억한다. 이 분의 자료를 찾아보면, 시라소니에게서 직접 박치기에 대해 전수 받았고 이런저런 전통무술들을 많이 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실력도 있고 전통도 있는 도장이었다는 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당시 부산에서는 아이키도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차피 아이키도의 원류가 대동류이고 대동류가 한국 합기도에 결합된 거라면 합기도에 결국 대동류가 녹아 있으니 그것도 좋겠다는 심정으로 입문한 것이었는데, 가르치는 방식과 체계가 내 예상과 너무 달라 실망했다는 것이지, 합기도가 수준 낮은 거라고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아이키도와 비슷한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루에 다섯 개씩 가르쳐 주던 수들이 대동류의 소중한 기술들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하나하나를 몸에 익힐 틈도 없이 매일 다섯 수씩 새로운 낱기술들을 으스대듯 가르치던 젊은 사범 덕에 관절기 몇 개 빼고는 뭘 배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몸에 남아 있지도 않다. 



알면 알 수록 경험하고 싶던 아이키도


9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에 유학 중이던 동생을 통해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일본의 격투기 대회 K-1를 포함해서 아이키도 비디오들을 쉽게 구해볼 수 있었다. 동생이 일본의 렌탈샵인 '츠타야(TSUTAYA)'에서 무술 비디오들을 종류대로 빌려서 복사한 뒤에 수시로 한국으로 보내주었다. 당시 보내준 무술 비디오들은 K-1, 판크라스(Pancrase), 아이키도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자료는 '신기! 시오다 고조 1962-1990 전기록 아이키도 요신칸(神技・塩田剛三 1962~1990 全記録 合気道養神館)'이다.

DVD로 재출시 된 동영상. 나는 VHS 버젼의 복사판으로 시청할 수 있었다.

97년, 토오쿄오를 방문했을 때 신주쿠의 츠타야의 무술 코너에서 한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많은 종류의 비디오 자료들을 보고서야, 일본 무술계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진화되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양국 무술 수준의 높고 깊음을 비교하자는 게 아니라, 당시 한국에서는 주로 대만이나 일본의 무술서적을 번역해서 출간하기 바빴지만, 일본에서는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한 내용들을 책이나 비디오로 공개해서 정보를 공유하는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선진화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상업적인 활성도나 발표되는 자료들의 수준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한국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요즘 더욱 절실히 느끼지만, 샌드백을 치는 종류의 무술은 신체의 노화가 진행될 수록 무리가 따른다. 격정에 휩싸여 있던 20대 때와는 달리 흥미도 떨어지고 싫증이 난다. 정강이가 보라색이 될 때까지 샌드백을 차고 또 차고 몸을 혹사해도 그렇게 된 몸을 보며 흐뭇해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실제로 도장에 가보면 알 수 있듯 실생활에서 치고 받기 위해서 운동을 배우러 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10대 청소년들이나 무도계에 몸 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냥 그 운동이 좋아서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 말인즉슨,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으려면 신체에 무리가 따르는 그런 종류의 운동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는 말이 된다.


어쨌든, 쉰내 나는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차는 운동에 점점 매력을 잃어 갔는데, 여러 경로를 통해 알게 된 아이키도는 상당히 색다르면서도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연무대회 비디오 같은 것을 보면 연령대도 상당히 높아서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겠다는 것을 알았다. 화려한 발차기와 실전의 효용성을 쫓던 시절은 가고, 그렇게 나이가 들어갈 수록 부드럽게 몸에 체화되는 종류의 무술이 좋아졌다.



'합기(合氣)'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사실, '합기(合氣)'라는 것이 뭔가 신비로운 기(氣)를 사용하는 기술인 것 같기도 해서 아이키도에 더 관심이 간 것 같기도 하다. 1980년대 중후반, 한참 기(氣)의 세계와 단전호흡, 중국 경기공(硬氣功) 등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에는 '합기'를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어에는 사실, '합기(あいき, 合気, 아이키)'란 말이 없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합기'라는 표현은 아이키도나 합기유술을 제외하면 사용하는 곳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국어사전 코지엔(広辞苑) 제5판. 합기라는 단어가 없고 아이키도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이다.


사전에서는 あいき(합기, 合気)라는 단어를 독립된 단어로 분류하지 않고 아이키도와 동일시하고 있었는데, 아이키도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무술의 하나.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 盛平, うえしば もりへい, 1883~1969)가 고류무술(古流武術)의 일파(一派) 대동류합기유술을 배워서 창시. 관절을 이용한 던지기(

投げ技), 누르기(抑え技)에 특색이 있다. 호신술로 알려진다. 합기(合気).

위와 같이 '합기'는 아이키도의 약칭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어 있고 관련 설명은 위 내용이 전부다. 즉, 일본 국어를 편찬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합기'란 아이키도계에서만 사용하는 전문 용어인 셈이다. 실제로 접해보지 않았기에, 손만 대도 픽픽 날려지는 것이 합기라 생각했는데 무슨 원리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이키도보다 앞서 합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대동류합기유술(大東流合気柔術)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보면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재 대동류를 이끌고 있는 콘도 가쯔유키(近藤 勝之)의 '합기란 무엇인가(合気道は何か)'라는 비디오를 보면 대동류유술과 대동류합기유술의 차이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1개조(一か条) 잇뽄도리(一本捕り)의 경우,

접촉하는 순간 상대방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의 유술이 단지 상대방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해, 아래의 합기유술은 상대방의 공격이 떨어지기 전 들어가며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있다.

시연을 보면 상대방이 들어오기 전 앞으로 전진하여 공격력을 흘려 밸런스를 무너뜨린다.


1개조(一か条) 잇뽄도리(一本捕り) 우라(裏)의 경우, 

접촉하는 순간 상대방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것에 더해서 내 힘을 더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합기가 적용된 기술은 상대의 힘 + 나의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상대방의 공격을 소극적으로 그대로 받는 것이 일반적인 기술이라면, 합기가 가미된 기술은 상대방의 공격이 닿기 전, 스스로 힘의 이동을 먼저 일으켜서 자신의 힘의 흐름 속에 상대방의 힘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대동류에서 설명하는 합기의 의미인 것 같다. 어찌보면 방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먼저 공격하는 것 같다. 기(氣)의 작용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런 설명이 더 신뢰가 간다. 


가끔, 잡기만 해도, 살짝 어깨를 튕기기면 해도, 심지어는 손을 대지도 않고도 쓰러지게 하는 것을 신비의 합기라고 하는 경우도 가끔 보는데, 요즘도 일본에서 '신기(神技)', '비전(秘傳)' 등의 부제를 달고 합기란 무엇인가 따위의 서적이나 비디오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그 개념이 정확하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합기란 게 없다거나 있어도 습득할 수 없다는 방증도 될 수 있지 않나. 그렇지 않고서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실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대동류 육방회(大東流 六方會)의 오카모토 세이고(岡本正剛) 선생이나 아이키도 요신칸(合気道養神館)의 시오다 고조(塩田剛三) 선생과 같은 합기가 정말 가능한 것인지 나는 지금도 의문스럽다.


어쨌든, 아이키도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랜동안 계속되었고 태극권(太極拳) 연무에서 아이키도와 유사한 원리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아이키도를 배우고 싶은 열망은 더 커져 갔지만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아이키도 한국총본부 도장이 서울 종로3가에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배우러 다닐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마침내 찾은 아이키도 종로도장


2000년에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어 마침내 종로 아이키도 도장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2000년 12월, 한국합기회에 입회하고 받은 회원증.


도장에서 첫 수련을 시작한 날, 윤익암 사범께서 1교 우라를 보여 주셨는데, 정면치기에서 상대방(受け,우케)은 마치 제비가 날아가듯 지면을 스치며 날아가서 엎어졌다. 눈 앞에서 목격한 아이키도의 실제 느낌은 아주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처음엔 파트너와 서로 어설픈 기술들을 주고 받는 느낌이 조금 답답했지만 어쨌든 즐겁게 수련을 해가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마포구 서교동에서 경기 남부 지역으로 거주지를 급작스럽게 옮기게 되어 아이키도와는 다시 인연이 멀어지게 되었다. 이사 후에는 인근에 아이키도 도장이 없어 더 이상 수련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키도에 젖을 기회가 없이 그렇게 15년이 지났다. 


가정을 꾸린 직장인이 사회 생활을 하며 특정 운동을 꾸준히 지속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동안 간간이 음식조절도 하고 체육관에 나가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관리를 해 왔는데 어느 순간 아이키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지부도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새해에는 다시 아이키도를 시작하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 가는 상황이 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원래 이 포스트는 새해부터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는 아이키도 지부도장에서 아이키도를 배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기대된다는 내용을 담을 내용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왜 그런 심정을 갖게 되었는지 히스토리를 간략하게나마 쓰다보니 점점 내용이 산으로 갔다. 아이키도를 오랜 동안 수련하시어 그 오의(奧義)를 터득하고 계신 분들은 이 포스트에 너무 괘념치 않으셨으면 좋겠다.


  1. 최용술이 다케다 소가쿠의 실제 제자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최용술 본인이 다케다 소가쿠로부터 대동류를 배웠다고 증명할 만한 자료가 없으며, 다케다 소가쿠의 직제자였던 요시다 코타로(吉田幸太郞, 1883~1966)가 최용술의 스승이라는 증언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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