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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칙 코리아, "내 나라(코리아)에 돌아와서 기쁩니다"

6월 14일 토요일 저녁 7시, 드디어 칙 코리아와 개리 버튼 듀오를 서울에서 볼 수 있었다. 삼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연장은 놀랄 정도로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지만.



오랜 경륜이 쌓일 수록 오히려 젊은 세대의 뮤지션들보다도 더 깊고 풍성한 연주가 가능한 재즈라는 쟝르의 특성 때문인지, 두 분 모두 70대의 나이임에도 지금이 전성기라고 해도 좋을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재즈를 공부할 때 재즈 화성(Jazz Harmony)을 공부하고 다양한 스케일들(Scales)과 12 key 모두 많은 시간을 들여 꾸준하게 연습해서 숙달해야 하고, 코드와 스케일의 변화에 따라 자유로운 즉흥 연주(Improvise)를 하기 위해서는 그 기초가 되는 다양한 모티브(Scale Motives), 재즈 리프(Riff)나 프레이즈(Phrase), 재즈 릭(Jazz Licks) 등을 자다가도 눈감고 칠 수 있을 정도로 숙달시켜야 한다. 이는 언어를 잘 구사하기 위해 많은 어휘(Vocabulary)와 표현(Expression)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


대개 평균적인 수준의 재즈 연주자들이 연주할 때 나오는 임프로바이제이션은 대부분 본인들이 연습해 온 릭 등의 조합이다. 코드와 스케일을 이용하여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 등도 연습을 하지만 그런 기계적인 즉흥 연주에 개성이 깃들기가 그리 쉬울까 싶다. 재즈 교재들에 수록되어 있는 그 수많은 엇비슷한 릭 등으로 연습한 연주자들의 곡들에서 대중이 특별한 감흥을 느끼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 오랜 시간 대중과 업계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뮤지션에게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칙 코리아가 그런 뮤지션 중 한 사람인 이유는 딱 하나다.


"Creativity"


칙 코리아가 2002년에 썼던 "A Work in Progress...On being a Musician"를 보면 첫 번째 모토를 'Freedom to Think'라고 표현하고 있다. 상투적인 말로 들릴지 몰라도 힘을 주어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창조적인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젊은 재즈 연주자들이 본인들이 연습한 프레이즈나 리프를 연주 중에 틀리지 않고 그 빠른 코드와 스케일의 변화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더 대단한 것은 그런 상투적인 리프나 프레이즈를 사용하지 않고 그를 넘어서 매번 다르게 독특한 방식으로 연주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본인만의 유니크한 스타일을 가진 재즈 연주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질 수 밖에 없다.


머리 속에 떠오른 멜로디나 아이디어를 바로 실시간으로 연주해 낼 수 있는 이런 능력이란 그리 흔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칙 코리아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는 키스 쟈렛(Keith Jarrett)을 아는 사람이라면 피아노 연주시에 입으로도 쉴 새 없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그 즉흥적인 멜로디를 동시에 건반으로 뱉어내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피아노 연주와 연주자의 나불거림(^^)을 함께 들어야 하는 이런 스타일의 연주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형적인 재즈 리프나 프레이즈가 난무하는 그저 그런 재즈보다 유니크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창의적인 연주를 기대한다면 감수할 만 하다. 


칙 코리아나 키스 자렛 모두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 드는 크로스오버 뮤지션들로, 절대 뉴 올린스(New Orleans) 재즈를 떠올릴 수 없는 음악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솔로 피아노 연주를 듣다 보면, 내가 듣는 이 곡이 재즈인지 클래식인지 헷갈릴 정도로 본래의 재즈적인 감성은 느끼기 어려운 곡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오히려 재즈라는 형식을 빌어서 본인들만의 쟝르를 따로 만들었다고 보는게 맞다고 본다. 이들도 60년대에 재즈 트리오 등으로 활동했던 20대때에는 눈에 띄는 신인이긴 했지만 그다지 유니크하지 않은 보통의 재즈 피아니스트였었다. 여러 포맷과 여러 쟝르의 음악을 실험적으로 시도해 보고, 늘 새로운 뮤지션들과의 교류를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수십 년째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니 거장이라 불러 줄 만 하다. 이날 공연은 그런 거장이 2명이나 함께 한 자리였으니, 재즈를 제대로 즐길 줄 알거나 배우고 있는 이들에게는 정말 뜻 깊은 자리였을 것이다.



공연 얘기를 해보자면, 

공연이 시작되고 칙 코리아가 무대에 나오자마자 본인의 폰을 꺼내 관객들을 찍어대는 바람에 폭소가 쏟아졌다. "내 나라(코리아)에 돌아와서 기쁩니다(Glad to be back to my Country!)"라는 칙 코리아의 농담 섞인 멘트로 시작한 콘서트는 2011년 독일 부르크하우젠(Burghausen) 재즈 페스티발에서 보여준 레파토리랑 거의 비슷했다. 연주된 곡목은 다음과 같다.(공연 전 기획사에 문의했을 때, 정확한 프로그램은 받지 못했다고 하여 공연 중 따로 메모하여 정리함)


1. Love Castle (Chick Corea)

2. Waltz for Debby (Bill Evans)

3. Can't We Be Friends? (Art Tatum)

4. Strange Meadow Lark (Dave Brubeck)

5. Hot House (Charlie Parker/Dizzy Gillespie의 연주로 유명한 곡. 작곡자는 Tadd Dameron)

6. Alegria (Chick Corea)

7. Crystal Silence (Chick Corea)

8. Chega de Saudade (Stan Getz/Antonio Carlos Jobim)

9. Eleanor Rigby (Beatles/Paul McCartney)

10. Mozart Goes Dancing (Chick Corea)


Encore:

11. Blue Monk (Thelonious Monk)

12. Armando's Rhumba (Chick Corea)


시종일관 긴장감 전혀 없는 유쾌한 연주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또한 "Hot House" 앨범 자체가 대부분 재즈 스탠다드를 담은 것이다 보니 칙 코리아를 잘 몰랐더라도 재즈에 관심이 있다면 알 만한 곡들이었을 것이다. "Waltz for Debby"는 Bill Evans의 오리지널로, 예나 지금이나, 아마츄어나 프로나 흔하게 연주하는 단골 레퍼토리지만 칙 코리아의 연주를 가장 좋아한다. Chick Corea & Gary Burton - The New Crystal Silence (2008), Chick Corea - Five Trios (2007), Corea, Clarke & White - Forever (2011) 등 3개의 앨범에서 연주한 적이 있다. CD로 들을 때도 그랬지만, 인트로의 임프로바이즈가 시작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앙코르후 첫 번째로 연주했던 Thelonious Monk의 "Blue Monk"는 유일한 Blues곡으로, 오리지널은 B Flat Blues였는데 공연에서는 F key로 연주됐다. 블루스라는 쟝르가 그렇듯이, 아무것도 모르고 온 관람객이 유일하게 흥겹게 즐길 수 있던 곡이 아니었나 싶다. 'Bud Powell'이나 'Falling Grace' 같은 곡들을 듀엣으로 꼭 듣고 싶었는데 그게 조금 아쉬웠고, 6월 13일 대구 공연에서는 앙코르 후 대표곡 "Spain"이 즉흥적으로 추가되었다는데 서울 공연에서는 그렇지 않아 안타까웠다. 대구 소식을 접하고는 끝까지 안 나가고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2012년 'Hot House' 앨범을 왜 자꾸 New CD라고 얘기하는지는 좀 의아했다. The latest CD(가장 최근 CD)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 설마, 다음 CD가 나올 때까지 계속 New인 건가? 참고로 , Gary Burton과 Chick Corea가 발표한 "Hot House"앨범은 2012년도 발매됐고, 2013년 55회 그래미에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칙 코리아가 2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수상 부문은 최우수 재즈 솔로 연주상(Best Improvised Jazz Solo)과 최우수 연주곡 작곡상(Best Instrumental Composition). 작곡상은 "Mozart Goes Dancing"이라는 곡에 대한 것으로 현악 4중주의 편곡이 돋보이는 곡이다. 이로써, 그래미상을 통산 20회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칙 코리아와 개리 버튼이 함께 발표했던 앨범 중 "Native Sense"와 79년 쮜리히 공연 CD를 개리 버튼 싸인 용으로 가져 갔고, 칙 코리아 용으로는 칙 코리아가 2002년 출판했던 "A Work in Progress"라는 책을 가져 갔다. 후배들에게서 많이 받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아! 이 책을 가지고 있군요!(Oh, you have this book!)"하면서 반겼다. (이 책은 절판되어 현재는 구할 수 없는 것으로 안다.)


공연 후 사인회에서 짧았지만 아내와, 나 그리고 칙 코리아, 셋이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따뜻한 악수로 마무리했던 오늘 공연, 눈물 날 만큼 좋았다. 

(미안합니다, 개리 버튼 선생님. 사인만 받고 상투적인 인사만 한 것 같아서 ㅠ.ㅠ 그래도 칙 코리아와 마찬가지로 늘 존경해 온 뮤지션들 중 한 분이신 건 확실합니다. 직접 만나 뵙고 따뜻한 체온도 느낄 수도 있어서 기뻤습니다.)



73세의 칙 코리아가 다시 또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