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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키도

vision2real 2015.12.27 06:27

남자 아이들의 로망, 무술(武術)


나는 무술이라는 것에 대해 보통의 남자 아이들 보다 조금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꼭 누군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영화의 판타지에 매료되어서도 아닌, 그냥 태생적으로 무술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다. 나는 구기종목을 좋아하지 않지만, 또래들이 야구와 축구를 좋아하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냥 취향이 무술과 같은 몸 쓰는 종류의 운동인 것이다.


1970년대, 내가 다니던 어느 서슬 퍼렇던 태권도장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그 당시 나와 같이 수련했던 또래들이 불과 7~10세에 불과한 나이였음에도 군대처럼 집단 기합도 많이 받았고 심지어는 매를 맞기도 했다. 매라고 해봐야 일렬로 벽에 물구나무를 세운 상태에서 발바닥에 회초리를 가볍게 때리는 수준이었지만 집에서도 맞지 않던 아이들에게 태권도 도장은 이미 심리적으로 공포를 일으키는 공간이 되기에 충분했다.


낮시간의 도장은 대체로 햇빛만이 유일한 광원이던 다소 음침한 곳이었고, 요즘의 체육관들처럼 쿠션있는 매트 바닥도 아닌 차디찬 목재의 마루였다. 그곳에서는 떠들어서도 안 되었으며 관장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었다. 엄마, 아빠의 말은 안 듣더라도 도장에서 관장님의 한 마디를 거스른다는 것은 아무리 어린 나이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즉, 당시엔 태권도장에 다니면서 착한 아이가 되지 않기란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관장님은 절도 넘치는 무술가적인 언행에서 내뿜는 카리스마로 아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도장이라는 공간은 신성시되었다. 아동교육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지나친 면이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흔하지 않은 충심(忠心)과 무심(武心)이 길러지던, 도장(道場)이라 할 만했다. 단순히 체육관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머릿속 기억들이 이제는 향수로 작용하는 일이 빈번해지는 나이가 되다 보니, 나는 그때 그 시절의 도장이 무술을 수련하기에 이상적인 공간으로 여겨진다. 가르치는 지도자는 존경 받을 언행을 하고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주며, 수련하는 공간은 즐겁게 뛰어 노는 곳이 아니라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닦는 신성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당연시 되는 공간말이다. 그래서 요즘 어린 아이들과 늦은 시간까지 함께 놀아주고 일일이 차로 데려다 주는 운전기사 노릇까지 해야 하는 한국 무술 지도자들의 현실은 너무도 서글프게 느껴진다. 내가 사는 곳 인근에는 1층에 유리벽이 설치된 태권도 체육관이 있는데, 매번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광경은 마치 놀이터를 보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짓게 된다. 도장은 온데간데 없고 체육관만 남았다. 현재와 과거의 도장을 비교해보면, 장단점이 있겠지만 공간에 대한 경외심이 없으면 가르치는 무술은 단순한 싸움기술로, 가르치는 사람은 기술자로 격하되기 쉽다.



무술을 배우러 다니다


남자 아이들이 이소룡(李小龍, Bruce Lee)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세대와 상관 없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중학생 시절에 이소룡의 팬이 되었는데, 당시엔 이소룡처럼 멋있는 중국무술을 배우려고 하면 무슨 무술인지도 모를 십팔기(十八技)만 배우던 시절이다. 성인이 되어 알아 보니 십팔기는 대만 화교들이 주축이 되어 퍼뜨린 국술(國術)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무예신보(武藝新譜)'에 실렸다는 18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요즘에야 워낙 무술에 대한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그런 정보들이 일반화되어 태극권(太極拳), 팔극권(八極拳), 당랑권(螳螂拳), 형의권(形意拳) 등등 정확한 유파의 이름을 걸고 가르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그 당시 중국무술을 가르치는 곳은 주로 '쿵푸''십팔기'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한 유파의 명칭이 도장 한 가운데 크게 붙여져 있었는지 모르지만 중학생이었던 나는 알아본 적이 없다.


어쨌든, 내가 경험했던 중국 무술의 수련 방법과 그 실전적 가치를 생각해 보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의문점이 많다. 성인이 되어서는 합기도도 해보고, 킥복싱과 격투기도 해보았다. 격투기는 그 이전에 수년간 배웠던 무술들에서 느꼈던 실전적 가치에 대한 의문점을 불과 2-3개월 만에 해소시켜 주었는데, 일반인들이 배우기 어려운, 실전 경기에서 사용되는 팁들을 위주로 선수 트레이닝을 받은 적도 있지만 격투기협회들간의 이권 다툼으로 예정되었던 대회가 무산되는 등 여러가지로 실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경험 상, 실전에 당장 필요한 무술을 찾는다면 격투기를 추천하고 싶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요즘 유행인 종합격투기(MMA)나 주짓수(Brazillian Jiu-Jitsu) 같은 무술들도 실전에서 바로 위력을 발휘하는 그런 종류의 운동일 것이다.



황당했던 일본 합기도, 아이키도


지금은 인터넷으로 각국 여러 종류의 무술 동영상들을 집에서 손쉽게 볼 수 있지만, 내가 합기도를 배우던 때에는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용을 들이지 않고 타무술의 영상을 접하기란 쉽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책으로만 보던 일본 합기도인 아이키도(이하 한국 합기도와 구분을 위해 아이키도라 함) 연무 비디오를 구해 본 느낌은 말 그대로 황당했다.


아이키도 중에서도 다소 과격한 편인 요신칸 아이키도(養神館 合気道) 시오다 고조(故 塩田剛三, Shioda Gozo)의 시범이었는데 충격적이었다. 그 위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발차기도 없고 주먹을 쓰지도 않으며 유도처럼 잡고 던지는 것도 아닌데도 손이 살짝 닿기만 해도, 발가락이 살짝 닿기만 해도 사람들이 벌렁벌렁 날아가고 꼬꾸라지는 장면들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사기라며 간간이 웃으며 봤던 기억이 난다. 연이어 구해 본 비디오는 아이키도 2대 도주(2代 道主)였던 우에시바 킷쇼마루(故 植芝吉祥丸, Ueshiba Kisshomaru)의 연무 시범이었는데 무슨 비디오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닥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때 본 인상들을 떠올려보자면 역시 현재의 아이키도보다는 다소 과격한 형태였다는 느낌이다. 부드럽다기 보다는 그냥 획휙 날려진다는 느낌 뿐이었으니까. 어쨌든, 당시에는 홍콩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아이키도에 대한 첫 인상은 영화처럼 과장된 연출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고심 끝에 선택했던 합기도 도장


당시 아이키도를 접하고 한 번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좀 알아보니, 한국의 합기도와 일본의 아이키도는 한자(漢字) 표기만 같을 뿐 다른 무술이었다. 합기도는 일본의 대동류 합기유술(大東流 合氣柔術)의 고수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의 제자라고 주장했다는 최용술씨가 한국에 귀국하면서 전파한 야와라(やわら)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각주:1] 그렇지만, 신라 화랑에서 유래했다는 합기도계의 주장에 대해서 크게 반감을 가진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일제 시대를 지나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이름 모를 명칭으로 존재하던 무술들에 일본 유술의 기술들이 혼합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명칭만 합기도라고 하게 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니까, 뭐 그 중 하나라도 신라시대로부터 전승되었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차력을 가르치는 도장이나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명칭의 무술들을 가르치는 곳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무시무시한 차력시범을 본 적도 많았는데, 가끔 TV에 소개되던 차력시범을 합기도 사범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키도와는 다른 전통무술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합기도와는 달리 아이키도에는 차력이나 화려한 발기술 같은 요소가 없으니까. 게다가, 내가 속했던 합기도장에서는 '고무도(古武道)' 라는 것도 같이 가르쳤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고 합기도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그닥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무술을 배우려면 여러 유파의 특성을 잘 알아 보고 고민을 해야 하는 것처럼 합기도도 그런 고민이 필요하다. 동일한 합기도라는 명칭을 쓰더라도 도장마다 소속된 협회가 다 다르며, 협회마다 기술의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합기도가 같은 거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당시에는 대한합기도협회, 국제연맹합기회, 대한기도회 등 3개 합기도 단체만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특히 대한기도회 소속 도장이 월등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 이미 합기도계의 파벌이 심한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집 앞 넘어지면 코 닿을 곳에 국술원 합기도장이나 여타 도장이 있었지만, 버스를 타고 멀리 다녀야 하는 대한기도회 도장을 찾아 입문했다. 지금은 그 이유가 잘 생각나지 않는데, 당시엔 대한기도회 합기도가 아이키도의 원류인 대동류 합기유술에 가장 가깝다고 판단했었건 것 같다.


그러나, 1990년도에 처음 접했던 합기도에 대한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산에서 꽤 유명했던 대한기도회 소속 도장에서 처음 접한 합기도는 낱기술 꾸러미였다. 이른 저녁 시간대를 담당하던 혈기만 왕성하고 지도경험은 부족했던 젊은 사범의 문제였을지 모르겠지만, 하루에 다섯 수씩 가르쳐 준다고 했다. 아무 원리도 없고 서로 관련성도 없어 보이는 관절기들을 그냥 다섯 수씩 가르치는 것이다. 찌르기와 발차기, 태권도 품세와 흡사한 이무권이라는 형도 가르치고 있어서 내가 태권도를 배우는지 합기도를 배우는지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도리깨봉(경찰봉 중간에 손잡이 붙은 걸 생각하면 됨)을 무기로 따로 배워야 했는데, 관절기와 태권도 같은 격기, 무기술 등 체계도 없고 연관성도 없는 기술들을 각각 따로 따로 배워 한 마디로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이었다.

일본 오끼나와섬에서 유래했다는 무기로 알려지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일본 명칭인 톤퐈(トンファー, Tonfa)가 널리 쓰인다. 많은 국가에서 경찰봉으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때리고, 막고, 때리는 등 다용도로 사용 가능한 효율적인 무기로 분류된다. 부산 지역 고무도협회도장에서는 도리깨봉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모든 대한기도회 합기도 도장에서 그렇게 가르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산의 범일동 지역 일대에서 여러 개의 도장을 운영할 정도로 명성도 있었고 당시 유명했던 총관장과 그 아들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던 꽤 유서 깊은 도장이었다. 총관장을 회상하면 뽀빠이 이상용씨 이미지가 떠오른다. 작지만 다부지고 항상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 다니셨는데, 직접 지도를 받은 적은 없지만 주변의 인망도 두텁고 관원들한테도 상당히 인자하셨다. 무술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이 가끔 정체술(整體術) 같은 치료를 받으러 왔던 것으로도 기억한다. 이 분의 자료를 찾아보면, 시라소니에게서 직접 박치기에 대해 전수 받았고 이런저런 전통무술들을 많이 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실력도 있고 전통도 있는 도장이었다는 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당시 부산에서는 아이키도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차피 아이키도의 원류가 대동류이고 대동류가 한국 합기도에 결합된 거라면 합기도에 결국 대동류가 녹아 있으니 그것도 좋겠다는 심정으로 입문한 것이었는데, 가르치는 방식과 체계가 내 예상과 너무 달라 실망했다는 것이지, 합기도가 수준 낮은 거라고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아이키도와 비슷한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루에 다섯 개씩 가르쳐 주던 수들이 대동류의 소중한 기술들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하나하나를 몸에 익힐 틈도 없이 매일 다섯 수씩 새로운 낱기술들을 으스대듯 가르치던 젊은 사범 덕에 관절기 몇 개 빼고는 뭘 배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몸에 남아 있지도 않다. 



알면 알 수록 경험하고 싶던 아이키도


9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에 유학 중이던 동생을 통해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일본의 격투기 대회 K-1를 포함해서 아이키도 비디오들을 쉽게 구해볼 수 있었다. 동생이 일본의 렌탈샵인 '츠타야(TSUTAYA)'에서 무술 비디오들을 종류대로 빌려서 복사한 뒤에 수시로 한국으로 보내주었다. 당시 보내준 무술 비디오들은 K-1, 판크라스(Pancrase), 아이키도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자료는 '신기! 시오다 고조 1962-1990 전기록 아이키도 요신칸(神技・塩田剛三 1962~1990 全記録 合気道養神館)'이다.

DVD로 재출시 된 동영상. 나는 VHS 버젼의 복사판으로 시청할 수 있었다.

97년, 토오쿄오를 방문했을 때 신주쿠의 츠타야의 무술 코너에서 한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많은 종류의 비디오 자료들을 보고서야, 일본 무술계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진화되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양국 무술 수준의 높고 깊음을 비교하자는 게 아니라, 당시 한국에서는 주로 대만이나 일본의 무술서적을 번역해서 출간하기 바빴지만, 일본에서는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한 내용들을 책이나 비디오로 공개해서 정보를 공유하는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선진화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상업적인 활성도나 발표되는 자료들의 수준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한국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요즘 더욱 절실히 느끼지만, 샌드백을 치는 종류의 무술은 신체의 노화가 진행될 수록 무리가 따른다. 격정에 휩싸여 있던 20대 때와는 달리 흥미도 떨어지고 싫증이 난다. 정강이가 보라색이 될 때까지 샌드백을 차고 또 차고 몸을 혹사해도 그렇게 된 몸을 보며 흐뭇해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실제로 도장에 가보면 알 수 있듯 실생활에서 치고 받기 위해서 운동을 배우러 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10대 청소년들이나 무도계에 몸 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냥 그 운동이 좋아서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 말인즉슨,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으려면 신체에 무리가 따르는 그런 종류의 운동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는 말이 된다.


어쨌든, 쉰내 나는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차는 운동에 점점 매력을 잃어 갔는데, 여러 경로를 통해 알게 된 아이키도는 상당히 색다르면서도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연무대회 비디오 같은 것을 보면 연령대도 상당히 높아서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겠다는 것을 알았다. 화려한 발차기와 실전의 효용성을 쫓던 시절은 가고, 그렇게 나이가 들어갈 수록 부드럽게 몸에 체화되는 종류의 무술이 좋아졌다.



'합기(合氣)'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사실, '합기(合氣)'라는 것이 뭔가 신비로운 기(氣)를 사용하는 기술인 것 같기도 해서 아이키도에 더 관심이 간 것 같기도 하다. 1980년대 중후반, 한참 기(氣)의 세계와 단전호흡, 중국 경기공(硬氣功) 등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에는 '합기'를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어에는 사실, '합기(あいき, 合気, 아이키)'란 말이 없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합기'라는 표현은 아이키도나 합기유술을 제외하면 사용하는 곳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국어사전 코지엔(広辞苑) 제5판. 합기라는 단어가 없고 아이키도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이다.


사전에서는 あいき(합기, 合気)라는 단어를 독립된 단어로 분류하지 않고 아이키도와 동일시하고 있었는데, 아이키도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무술의 하나.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 盛平, うえしば もりへい, 1883~1969)가 고류무술(古流武術)의 일파(一派) 대동류합기유술을 배워서 창시. 관절을 이용한 던지기(

投げ技), 누르기(抑え技)에 특색이 있다. 호신술로 알려진다. 합기(合気).

위와 같이 '합기'는 아이키도의 약칭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어 있고 관련 설명은 위 내용이 전부다. 즉, 일본 국어를 편찬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합기'란 아이키도계에서만 사용하는 전문 용어인 셈이다. 실제로 접해보지 않았기에, 손만 대도 픽픽 날려지는 것이 합기라 생각했는데 무슨 원리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이키도보다 앞서 합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대동류합기유술(大東流合気柔術)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보면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재 대동류를 이끌고 있는 콘도 가쯔유키(近藤 勝之)의 '합기란 무엇인가(合気道は何か)'라는 비디오를 보면 대동류유술과 대동류합기유술의 차이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1개조(一か条) 잇뽄도리(一本捕り)의 경우,

접촉하는 순간 상대방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의 유술이 단지 상대방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해, 아래의 합기유술은 상대방의 공격이 떨어지기 전 들어가며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있다.

시연을 보면 상대방이 들어오기 전 앞으로 전진하여 공격력을 흘려 밸런스를 무너뜨린다.


1개조(一か条) 잇뽄도리(一本捕り) 우라(裏)의 경우, 

접촉하는 순간 상대방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것에 더해서 내 힘을 더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합기가 적용된 기술은 상대의 힘 + 나의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상대방의 공격을 소극적으로 그대로 받는 것이 일반적인 기술이라면, 합기가 가미된 기술은 상대방의 공격이 닿기 전, 스스로 힘의 이동을 먼저 일으켜서 자신의 힘의 흐름 속에 상대방의 힘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대동류에서 설명하는 합기의 의미인 것 같다. 어찌보면 방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먼저 공격하는 것 같다. 기(氣)의 작용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런 설명이 더 신뢰가 간다. 


가끔, 잡기만 해도, 살짝 어깨를 튕기기면 해도, 심지어는 손을 대지도 않고도 쓰러지게 하는 것을 신비의 합기라고 하는 경우도 가끔 보는데, 요즘도 일본에서 '신기(神技)', '비전(秘傳)' 등의 부제를 달고 합기란 무엇인가 따위의 서적이나 비디오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그 개념이 정확하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합기란 게 없다거나 있어도 습득할 수 없다는 방증도 될 수 있지 않나. 그렇지 않고서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실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대동류 육방회(大東流 六方會)의 오카모토 세이고(岡本正剛) 선생이나 아이키도 요신칸(合気道養神館)의 시오다 고조(塩田剛三) 선생과 같은 합기가 정말 가능한 것인지 나는 지금도 의문스럽다.


어쨌든, 아이키도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랜동안 계속되었고 태극권(太極拳) 연무에서 아이키도와 유사한 원리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아이키도를 배우고 싶은 열망은 더 커져 갔지만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아이키도 한국총본부 도장이 서울 종로3가에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배우러 다닐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마침내 찾은 아이키도 종로도장


2000년에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어 마침내 종로 아이키도 도장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2000년 12월, 한국합기회에 입회하고 받은 회원증.


도장에서 첫 수련을 시작한 날, 윤익암 사범께서 1교 우라를 보여 주셨는데, 정면치기에서 상대방(受け,우케)은 마치 제비가 날아가듯 지면을 스치며 날아가서 엎어졌다. 눈 앞에서 목격한 아이키도의 실제 느낌은 아주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처음엔 파트너와 서로 어설픈 기술들을 주고 받는 느낌이 조금 답답했지만 어쨌든 즐겁게 수련을 해가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마포구 서교동에서 경기 남부 지역으로 거주지를 급작스럽게 옮기게 되어 아이키도와는 다시 인연이 멀어지게 되었다. 이사 후에는 인근에 아이키도 도장이 없어 더 이상 수련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키도에 젖을 기회가 없이 그렇게 15년이 지났다. 


가정을 꾸린 직장인이 사회 생활을 하며 특정 운동을 꾸준히 지속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동안 간간이 음식조절도 하고 체육관에 나가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관리를 해 왔는데 어느 순간 아이키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지부도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새해에는 다시 아이키도를 시작하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 가는 상황이 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원래 이 포스트는 새해부터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는 아이키도 지부도장에서 아이키도를 배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기대된다는 내용을 담을 내용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왜 그런 심정을 갖게 되었는지 히스토리를 간략하게나마 쓰다보니 점점 내용이 산으로 갔다. 아이키도를 오랜 동안 수련하시어 그 오의(奧義)를 터득하고 계신 분들은 이 포스트에 너무 괘념치 않으셨으면 좋겠다.


  1. 최용술이 다케다 소가쿠의 실제 제자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최용술 본인이 다케다 소가쿠로부터 대동류를 배웠다고 증명할 만한 자료가 없으며, 다케다 소가쿠의 직제자였던 요시다 코타로(吉田幸太郞, 1883~1966)가 최용술의 스승이라는 증언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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