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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젊은 재즈 뮤지션들, "그대들이 알고 싶다"

vision2real 2016.05.03 00:19


요즘 음악하는 젊은 애들은 중요한 게 없어. 

인생이 없지.


음악이라는 게 뭐야.

그게 인생이지.

그게 또 예술이고.


-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2010)" 중에서



한국 토종 1세대 재즈 뮤지션들과 신세대 유학파 뮤지션들


한국의 1세대 재즈 뮤지션들은 대부분 미8군 악단 등에서 재즈를 알게 되고, 선배 뮤지션들로부터, 또는 독학으로 재즈를 배웠다고 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지로 유학을 떠나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 세대들에게는 지금과 같이 인터넷으로 음악과 정보를 간단하게 구할 수 있는 세대는 절대 이해 못할 치열함이 있었다. 군사독재를 거치며 철저하게 해외에서 유입되는 모든 문화가 검열되던 시절의 재즈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귀한 것이었다. 재즈에 대한 정보도 구하기 힘들었고, 있어도 나눌 길을 찾기도 어려웠으며, 배울 길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불법 복제된 빽판 LP 한 장도 감지덕지했을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턴테이블에 올리면 불법 제조라 더욱 조악하게 지직거리는 LP 특유의 노이즈 사이로 들리는 빽판에 대한 향수가 나도 있다. 80년대까지는 불법적으로 복제된 매체들(카세트 테이프, 빽판, 불법 복제 비디오 테이프 등)로밖에 접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구해 듣던 음악들 한 곡 한 곡에 대한 리스펙트는 엄청났으며, CD나 디지털 음원을 인스턴트로 소비하는 세대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생계도 걱정하던 어려운 시절에 재즈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 나누고 배워 스스로 재즈 뮤지션이 된 1세대에 대한 존경 또는 존중은 있어야 한다, 재즈 팬이라면.


현재, 블루노트(Blue Note) 같은 전문 재즈 클럽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재즈 애호가도 아닌 다수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연주하게 되는 한국의 척박한 재즈 신에서 유학이 필수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재즈의 본고장에서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거친 연주자들이 많이 유입됨으로써 타 장르의 뮤지션들이나 팬들에게도 조금씩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재즈 인구가 그만큼 늘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일부에서는 테크닉과 이론에 매몰된 몰개성한 뮤지션들을 공장처럼 찍어 낸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나는 후자에 한 표. 



유학파 재즈 뮤지션들의 비(非) 재즈 앨범


나는 10대 시절 미국 팝 음악(American Pop Music)과 락(Rock), 프로그레시브 락(Progressive Rock) 등을 미친 듯이 열심히 듣다가 우연히 재즈를 접하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오랜동안 듣고 있지만, 국내 뮤지션들의 앨범을 구입한 경우는 많지 않다. 서교동에 살 때는 바로 코 앞에 있던 신관웅씨의 문글로우를 지나다니면서도 늘 가봐야지 하다가 결국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퓨젼(Fusion)도 아니고 재즈 퓨젼(Jazz Fusion)도 아닌 퓨젼 재즈[각주:1](?)라는 쟝르로 80년대 후반 등장했던 '봄여름가을겨울'도 퓨젼 밴드라고 하기에는 많이 아쉬웠고(그냥 Rock 밴드?), 1990년대 초반에 김광민, 정원영, 한상원, 한충완 등의 2세대(?) 버클리 유학파들이 쏟아져 나올 때도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재즈라고 보기는 어려운 음악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버클리 음대(Berklee College of Music)에서 재즈를 공부했던 故정성조씨가 1호 유학파인 것으로 안다.

김광민 1집, "Letter From The Earth". 앨범이나 곡의 구성을 높이 평가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가끔 듣게 하는 매력이 있다.


김광민의 1집 "Letter From The Earth (1992)"는 아직도 카세트 테입과 CD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뉴에이지에 재즈가 살짝 가미된 정도라고 해야 한다. 특히, 타이틀 곡인 'Morning'은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예쁜 곡이지만 어린이 동요 같은 곡이다. 정원영의 앨범은 재즈가 아니라 그냥 가요 앨범이다. 1집 "가버린 날들 (1993)"의 곡들은 모두 좋다. 녹음 상태는 정말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한동안 즐겨 들었었다. 한상원의 1집 "Seoul, Soul, Soul (1993)" 앨범에는 미국의 유명 베이시스트 윌 리(Will Lee)가 베이스로 참여해서 더 관심을 갖고 들었었는데, 비트가 강한 '서울, 소울, 소울', '어쩔수가 없나봐' 같은 곡들과 양희은이 노래 부르는 '물망초' 같은 트랙들이 짬뽕으로 섞여 있어서 도대체 이 앨범의 성격이 뭐지?하며 의아해 하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김광민의 앨범은 5집까지 모두 구매했지만 1, 2집을 가장 즐겨 듣는다. 1, 2집에 있는 곡들은 '김광민 피아노 앨범 (1994, 삼호출판사)'이라는 악보집에 실려 있는데, 당시 MBC "일요예술무대"에서 사인해서 보내 준 것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피아노로 연주하기 쉽게 편곡도 되어 있고 곡들도 모두 아름다워서 대부분 한 번씩은 연주해 봤던 것 같다. 김광민 음악은 정통 재즈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특유의 감성과 캐릭터가 담겨 있는 음악으로 지금도 가끔 들을 때가 있다. 



국내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에 실망하게 되는 현실


김광민 이외의 비슷한 세대의 버클리 출신 뮤지션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라이브에서 보여 준 형편없는 연주(improvisation)에 당황해서 실망했던 기억이 여러 번 있어서 유학파들의 연주력에 대해 그닥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최근의 젊은 뮤지션들의 연주는 훌륭하지만 이때 받은 충격이 잔상으로 남아 그닥 큰 기대를 안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재즈 뮤지션이 재즈를 연주해서 인정 받는다는 것은 미국 본토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해마다 그 수많은 재즈 전공자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지만, 에스페란자 스폴딩(Esperanza Spalding)이나 히로미(Hiromi)처럼 신인이 주목 받고 살아 남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재즈를 클럽에서 듣는 문화 자체가 일천한 한국에서는 더더욱 재즈 연주자로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화성학을 가르치거나 개인 렛슨, 대중 음악의 세션 등을 통해서 살아 남는 방법 밖에 없는 척박한 현실에서 애초에 높은 수준의 재즈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한국의 재즈 뮤지션들과 재즈 팬들의 딜레마가 여기 있다. 나를 비롯한 한국의 음악 마니아들은 록(Rock)이든 팝(Pop)이든, 힙합(Hip Hop)이든 재즈(Jazz) 든 그 쟝르가 뭐든 간에 좋아하는 음악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을 만큼 지독하게 찾아 듣는다. 즉, 음악의 소비층이 얇은 것 뿐이지, 그 전문성이나 깊이가 옅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막 갓 졸업한 재즈 뮤지션들이 감성보다는 배운 이론에 충실하게 만든 습작이나 학예회에 어울릴 법한 곡들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다. 이들 젊은 뮤지션들 또한 자신이 진정 하고 싶어하는 음악을 했다가는 제작비도 건지지 못하겠다는 우려와 기대로 고민하다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야 만다. 결국, 서로 만족할 수 없는 결과물을 마주하고는 상호 괴리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 국내 재즈계의 참담한 현실


몇 개월 전, "재즈가 알고 싶다"라는 팟캐스트를 우연히 알게 되어 애청하고 있는데, 타이틀대로 "재즈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방송에 나오는 "뮤지션들이 알고 싶어서" 듣는다. 뮤지션으로서 겪고 있을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에서 오는 패배감을 얼핏 얼핏 읽고는 공감하게 되어 마음이 아프다. 본인들은 모를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런 감정이 자주 표출된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부하고 각고의 노력을 했음에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도 서럽지만, 제대로 된 공연 장소도 없고 손에 쥐어지는 몇만 원의 푼돈은 더 서글프다. 특히, 술에 취한 손님에 떠밀려 피아노 연주 중 의자와 함께 넘어져 뇌진탕을 일으킨 적이 있다는 김마리아의 에피소드를 듣고는 정말 화가 났다. 방송에서는 웃고 넘어갔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뮤지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 정도로 열악한 현실일 줄은 몰랐다.



지지와 응원이 필요한 때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는 ‘유학까지 가서 배운 재즈가 왜 그래?’라는 입장이었는데, 앞으로 한국의 재즈(Jazz Scene)를 이끌어 갈 젊은 뮤지션들에게는 공감하고 관심을 보여 주는 작은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서 재즈를 배웠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식 재즈를 흉내내야 할 이유도 없고, 굳이 한국식 재즈를 한답시고 국악과 무리한 접목을 할 필요도 없다. 자신만의 음악을 하면 될 일이다. 재즈 팬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단지 작은 지지를 보여주는 성의가 필요하다.


유학파는 국내파든, 지백, 민세정, 윤지희, 김마리아, 곽지웅, 오종대, 송미호, 김주헌, 이한얼, 전용준 등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뮤지션들의 진면목은 본 적도 없었고, 그들도 보여 줄 기회가 제대로 없었을 것이다. 실제론 비밥(Bebop)을 연주하지만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클로드 볼링(Claude Bolling)을 연주했을 수도 있다. 


솔직히 2016년 4월 29일에 있었던 메가박스에서의 라이브 연주는 성에 차지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박수를 쳐주고 공연 후 CD를 사서 사인을 받아 주는 정도의 지지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괜챦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내가 지백씨의 곡을 맘에 들어 해서, 재즈파크 공연에도 가고, CD도 사고 'My Sweet Orange Tree' 음원도 구매했다. 팟캐스트 후기나 뮤지션들의 페이스북에 코멘트도 남겼다. 이런 정도의 관심만으로도 지지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족한 점을 지적하기보다 격려를 해 줄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척박한 재즈신에 대해 얘기하자면 1세대 재즈 뮤지션들만 할까.



당신들은 꿀릴 게 없다


나는 그냥 재즈를 듣기만 하다가 어느 날 칙 코리아(Chick Corea)의 "Elektric Band(1986)" 앨범을 접한 후 살짝 충격을 먹고는 'Rumble', 'Got A Match?' 같은 곡들을 겁도 없이 내 맘대로 카피하기 시작했다. 이후, 정확한 코드와 악보도 궁금하고 즉흥연주(improvisation)에 대해 배우고 싶어서 독학으로 재즈를 공부했다. 그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론 공부와 연습으로 보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 동안 무심코 들어왔던 연주자들에 대한 존중(Respect)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모든 재즈 뮤지션들에게 나는 리스펙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즐겨 듣는 칙 코리아도 쥴리어드를 중퇴한 젊은 20대 초부터 프로로 활동을 시작했다. 선배 뮤지션들로부터 배울 수 있던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제외하고 재즈를 배운 커리큘럼으로만 보자면 유학파 그대들이 당시의 칙 코리아보다도 구조적이고 짜임새 있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중고교 시절부터 실용음악을 배웠을 거고, 대학에서도 버클리 유학파 교수들로부터 지도를 받은 후에 버클리로 유학을 간 경우도 많지 않나. 그렇게 오랜 시간 재즈에 대해 공부하고 연습했으니 배운 걸로만 보자면 꿀릴 게 없다. 그러니 좀더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음악에 몰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예전에, 'K-POP스타'에서 박진영씨가 '블루스 스케일(Blues Scale)'을 처음으로 배워서 만든 곡이 히트곡 'Honey'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Honey의 호른 섹션(Horn Section)이 돋보였는데, 이 편곡(Horn Arrangement)은 재즈와 퓨젼계에서 호른 섹션 편곡으로 유명한 트럼펫터 제리 헤이(Jerry Hey)가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박진영씨를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꼽지는 않지만, 자신이 배운 것을 대중화하는 데 천재적인 노력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젊은 재즈 뮤지션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응용이 아닐까 싶다. 


재즈 뮤지션에게 팝음악을 하라는 게 아니라, 행여, 학교에서 배운 수 많은 테크닉과 이론에 매몰되어 청중과 소통하지도 못하는 억지스런 곡으로 자신이 배운 것을 으스대려 하지 말며, 연주하는 이와 듣는 이가 모두 즐거워 할 수 있는 그런 경험들을 쌓아 나가다 보면 K-Pop처럼 K-Jazz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전하는 것이다.


이 포스트 서두에 인용한 1세대 재즈 뮤지션 유복성씨의 읊조림은 좀 과한 면이 있을지 모른다.


요즘 음악하는 젊은 애들은 중요한 게 없어. 

인생이 없지.


음악이라는 게 뭐야.

그게 인생이지.

그게 또 예술이고.


그러나, 이 글을 인용한 것은 나도 똑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분명히,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투박한 전(前) 세대의 음악에 비해 테크닉적으로도 향상됐고, 여러 스케일을 넘나들며 세련된 작곡 솜씨를 뽐내는 곡들이 있지만 연주에 있어서나 작곡에 있어서나 와닿지가 않는다.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구하기 힘든 것을 힘들게 찾아 다니며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 만들어 온 내공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는 모양이다.


진심으로 그대들의 노력과 고뇌가 보상받을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게 되기를 기원한다.








  1. 재즈에 타 음악 쟝르의 특성을 융합한다는 의미에서 퓨젼(Fusion)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보통은 그냥 퓨젼(Fusion)이라거나 재즈 퓨젼(Jazz Fusion)이라고 하지, 퓨젼 재즈라고 하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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