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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ASIOPEA Live Concert

우리가 흔히 퓨젼 재즈라고 부르는 쟝르의 음악은 그냥 퓨젼(Fusion) 또는 재즈 퓨젼(Jazz Fusion)이라고 해야 맞다. 퓨젼 재즈라는 용어는 콩글리쉬다. 스무스 재즈(Smooth Jazz)도 퓨젼이라 부르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적절하지 않다. 컨템포러리 재즈(Contemporary jazz)라는 쟝르가 있기는 하지만, 굳이 스무스 재즈를 쟝르로 묶어야 한다면 컨템포러리 재즈의 하위로 넣어야 한다.

Fusion이라는 쟝르는 원래 태생부터 실험적이고 하드코어적인 면이 있어서 Jazz나 Smooth Jazz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음악이다. Smooth Jazz는 보통 멜로디 중심이고 재즈 화성을 쓰지만 리듬이 단순해서 듣기에 편하다. 때로는 너무 편해서 한 번만 들어도 금방 물릴 정도라 내 경우는 오랜 기간 듣고 있기가 어려웠다. Smooth Jazz는 초심자가 재즈적인 화성에 익숙해지거나 어쩌다 기분 전환용으로 듣기 좋은 장르라고 본다. 반면, Fusion은 연주 중심이고 리듬이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화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초심자가 들었을 때는 '음악이 이게 뭐야!'하는 느낌이 강하다. 퓨젼 뮤지션으로는 Chick Corea, The Brecker Brothers, Mahavishnu Orchestra, Mike Stern, John Scofiled, Allan Holdsworth 같은 뮤지션들을 좋아한다.

내 경우, 80년대 중반 서울음반을 통해 GRP레이블의 음악들이 소개될 때 우연히 접한 Dave Grusin의 Night-Lines 앨범을 듣고는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됐고(이 앨범은 재즈나 퓨젼 앨범도 아니지만 Bossa Baroque라는 희대의 명곡에 담긴 재즈 코드 진행에 완전히 반했었다), 그 동안 듣던 Pop, Rock, Classical Progressive Rock(Renaissance같은) 등의 음악들을 잠시 멈추고, GRP 계열의 뮤지션들 위주로 음악들을 듣기 시작했다. 이 GRP라는 레이블에 소속된 뮤지션들이 Lee Ritenour, Earl Klugh, Rippingtones, Spyro Gyra, David Benoit 등 smooth jazz에 비교적 가까운 느낌이 나는 음악들 위주였었는데, 이때 1986년, Chick Corea가 처음으로  Elektric Band라는 앨범을 GRP를 통해 발매하였다. 당시 나는 Chick Corea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음악은 잘 모를 때였는데, Elektric Band 앨범이 다른 GRP 뮤지션들과 비슷할 걸로 기대하고 구매했다가 처음 들어 본 소감은 엉망진창이었다. 뭐 이런 음악이 있나 하고 쳐박아 둔지가 1년. 돈이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다 1년 후 다시 들었을 때의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년 전에는 내가 들을 수준이 아니었던 거였다. 그 후로 내가 들은 모든 퓨젼 앨범 중 1위는 늘 이 앨범이었다.

천재들의 음악이란 이런 것

내가 하드코어적인 퓨젼을 좋아하지만 오래 들으면 피곤해서 가볍게 들을 곡들도 필요하다. 그럴 때는 Kim Pensyl이나 Bob James, Lee Ritenour, Dave Grusin, Keith Jarrett 등을 듣곤 했다.

그럴 즈음에, 성음레코드에서 CASIOPEA라는 일본 밴드의 World Live '88 앨범을 발매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카시오페아 앨범 중 국내에 정발한 LP는 이 앨범이 처음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동아기획 소속의 뮤지션들이 젊은 층의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고 그 중에는 봄여름가을겨울 밴드도 있었는데, 처음 봄여름가을겨울 1집이 나왔을 때 Casiopea를 베꼈네마네 하는 주변 얘기들이 Casiopea를 들으니 이해가 됐다. 하드코어 Fusion도 아니고 Smooth Jazz 처럼 너무 소프트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듣기 좋은 음악이라 자주 듣게 됐고, 이때부터 Chick Corea와 Casiopea를 번갈아 가며 듣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Casiopea의 곡들은 코드 진행이 너무 좋았고 4인의 멤버 모두 연주력이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후 삼포니 레코드사를 통해 국내에 하나씩 발표되는 앨범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전에도 빽판(불법 음반)이 유통은 되고 있었지만, 그때는 Casiopea를 몰라서 들어 볼 기회가 없었다. 참고로, 나는 Casiopea의 앨범들 중 1980년도 "Make Up City"를 최고 명반으로 꼽는다. 이 앨범에 수록된 여러 곡들, 특히 Gypsy Wind, Ripple Dance, Life Game, Make Up City 등의 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Casiopea가 이때의 음악을 계속 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때는 재즈적인 느낌이 더 강한 퓨젼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1990년도 "The Party" 앨범을 기점으로 완전히 Rock적인 성향으로 돌아서버려 그게 너무 아쉽다. 그 때문에 초창기 멤버로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Bass를 담당하던 Tetsuo Sakurai와 Drums의 Akira Jimbo도 탈퇴해버리지 않았나. 어쨌든 이들의 라이브 공연에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지만 일본어가 포함된 노래나 영상등의 수입이 불법이던 시절이라 그럴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1996년 2월 17일 토요일, 처음으로 Casiopea가 한국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공연 시점이 최악이었던 것이, 공연일로부터 2일 뒤인 2월 19일 월요일이 바로 음력 설날이었다. 난 당시 부산에 거주 중이었는데, 공연이 끝나면 귀향길에 오르는 사람들이랑 섞여야 돌아올 수 있는 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귀향 열차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지금처럼 온라인 예매가 되던 시절도 아니다. 어쩌겠는가, 일단 가야지. 돌아 올 때는 내가 타야하는 시간대 티켓이 없으니 다른 시간대 부산행 열차를 끊고 서서 돌아오더라도 일단 서울로 가야지.

우여곡절 끝에 겨우 부산에 설날에 맞춰 돌아왔다. 무대가 바로 코앞인 좌석에서 공연도 잘 보고. 관객도 많았는데 그 후로는 더이상 Casiopea의 한국 공연이 없었다. 공연 중 Minoru Mukaiya가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키보드 솔로로 연주했었는데...최고!
그 날 내 좌석 바로 옆에서 MBC 일요예술무대 팀이 모두 다 촬영해갔는데 왜 그건 한 번도 안 틀어주는 거냐.

그러다가,

1999년, 여름 휴가 때 동생이 유학 중이던 토쿄에 잠깐 들르게 되었는데, 마침 1999년 7월 17일 Tokyo, NHK Hall에서 이루어진 CASIOPEA 앨범 데뷔 20주년 기념 투어 관람!
이해에 발매된 Material 앨범에서 색소폰을 맡았던 혼다 토시유키(Toshiyuki Honda)가 게스트로 참가~! 일본어를 그닥 잘하지 못하던 나 외에는 키보드의 Minoru Mukaiya가 뭐라고 말만하면 웃음이 자지러지던 일본 공연.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20주년 기념 공연 영상은 10월 2일, 이 투어에 특별히 원년 멤버들이 모두 출동한 날의 공연을 기록한 것이다. 이 공연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때도 갔었더라면

Tetsuo Sakurai와 Akira Jimbo가 함께하는 공연은 아쉽게도 한 번도 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후 국내에서 열렸던 아래 공연들은 모두 관람했다.

  • 2001년 6월 28일 CASIOPEA Main Gate 앨범 투어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 2003년 8월 9일 CASIOPEA 25th Anniversary Live in Seoul 공연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
  • 2006년 6월 28일 ~ 6월 29일  CASIOPEA + Sync DNA 내한공연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내가 알기로는 위 일정 외에 한국 공연은 더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원년 멤버 구성으로 제발 한 번만 오셔라.
책상 서랍 정리하다 오래된 티켓들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써 본다.